상상임신 하는 여자

김효비야

그대와 나
기적의 쓴 약을 먹고 나란히 누워
잠을 자면양수가 범람하여 붉은빛
 지느러미 반짝거리는 
물고기 한 마리 잉태할 수 있다면  

오늘 밤 그대에게 
신비의 씨앗  반쪽 씩 갖고 
싶었어요.
꼭 열 달 동안만, 아니 석 달 
열흘만이라도
내 뱃속에 뿌리고 싶었지요. 

우리가 신화의 주인공처럼
달빛을 마시고 별을 따주며
서로 밧줄로 묶어 천둥번개 치는 
날도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나는 다시 한 번, 둥지에 올라가
따뜻한 알을 낳겠어요.
하늘 문을 열고 천사가
 핏덩이 하나 심어줄 때까지
사랑과 영혼이 꿈틀거리는
기적의 첫 열매를 기다릴 거예요.

오늘 밤도 나는 꿈 속에서라도
 배가 불러오고 헛구역질을 하고 
싶어서
꽃무늬 흐드러진 임부복을 입고 
잘 거예요.

사랑하는 그대여  
나는 울다가 잠이 드는 날에도
홀로 만삭의 배를 쓰다듬는 꿈을
꿀 거예요.
죽도록.

김효비야 (1957~ ) 정읍출생 「상상임신 하는 여자」 첫 시집 시와 사람출판사
(2017) 현재 복지사로 근무.

<대나무들창을 열며>
김효비야 시인은 사랑의 정원에서 태어난 듯하다. 사랑과 열정을 빼면 그녀의 실체는 없을 듯하다. 이국적인 아름다운 모습을 지나칠 수도 없지만 센스와 인간관계의 탁월함이 금방 느껴진다. 우선 첫 시집의 출산을 큰 박수로 축하드린다.

그녀를 만나 내 주변이 많이 환해졌다. 그녀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장애우들과 소외계층 사람들에게 따뜻한 음료 한 잔이기도 하다. 참 좋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가 있기까지 남다른 고통이 있다. 이에 대한 언급을 뛰어 넘으며 시집 제목에 관심을 돌린다. 쉽지 않은 제목이다. 그녀의 까르마를 벗고 있다. 시는 시참이 있다. 그 진정성이 없다면 어휘놀음이라고 해야겠지. 왜 사람들은 시 앞에 겸허하고 때론 불꽃을 튀는가? 내 안의 나를 만나기 때문이다. 거기 한 터럭 오차도 없다. 내가 아는 나 그런 나를 피를 묻혀 눈물로 범벅하며 글을 쓴다. 때론 자해도하고 그런 상처를 다독이기도 한다.

이제 김효비야는 아름다운 꽃송이의 가시를 면류관으로 바꾸어 쓴다. 누구나 닮을 수 없는 성녀가 되는 길을 향해 시인의 길을 택하고 주기도문을 외우며 시를 낭송하며 성경책을 옆구리에 끼고 교회를 향해 걸어간다.

한 장의 사진을 잊을 수 없다. 그녀가 장애아를 안고 그윽하게 미소 짓는 그녀의 사진은 바로 피에타 바로 그 그림이었다. (芝暄堂)

교육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