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규원 시선 『이 시대의 죽음 또는 우화』(미래사) 중에서

저기 저 담벽, 저기 저 라일락, 저기 저 별, 그리고 저기 저 우리 집 개의 똥 하나, 그래 모두 이리 와 내 언어 속에 서라, 담벽은 내 언어의 담벽이 되고, 라일락은 내 언어의 꽃이 되고, 별은 반짝이고, 개똥은 내 언어의 뜰에서 굴러라. 내가 내 언어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너희들도 자유롭게 서고, 앉고, 반짝이고, 굴러라. 그래 봄이다.
 
  봄은 자유다. 자 봐라, 꽃피고 싶은 놈 꽃피고, 잎 달고 싶은 놈 잎 달고, 반짝이고 싶은 놈은 반짝이고, 아지랭이고 싶은 놈은 아지랭이가 되었다. 봄이 자유가 아니라면 꽃피는 지옥이라고 하자. 그래 봄은 지옥이다. 이름이 지옥이라고 해서 꽃이 안 피고, 반짝일 게 안 반짝이던가. 내 말이 옳으면 자,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 

<오규원>
*1941년 12월 29일 (경남 밀양시) ~ 2007년 2월 2일 (향년 65세)
*1982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대나무 들창을 열고>

글을 반복해서 소리 내어 읽으면 문리가 ‘탁’소리를 내며 터진다는 ‘인성구기(因聲求氣)’ 독서법이 있다. 소리를 내서 읽으면 기가 생기고 통하게 된다는 뜻이다.

소리 내어 오규원 시인의 ‘봄’을 읽어보자. 눈으로만 읽던 때와 달리 글자들이 뜻을 담고 살아난다.

봄인데 기운이 펄펄 나는 자연을 보며 죽은 체 지낼 수는 없다.
하다못해 담벼락도 보고 소리치고 불러오고 당연히 꽃도 그리고 밤하늘의 별도 불러들이는 시인. 자유를 불어넣어준 개똥도 자유. 굴러버려라. 굴러.

얼마나 그리운 자유인가? 얼마나 무서운 자유인가? 그 자유를 위해 몸부림하는 날 것들.
설령 ‘봄이 지옥’이라도 자유 의지대로 꽃피고 새 울고 별은 빛난다. 오늘 봄날 또 하루가 간다.
소리 내어 오규원 시인이 날인해준 ‘봄’을 읽자. 대신 시낭송하는 그대도 자유로운 생기를 터득할 것임에 틀림없다.

봄에서 구술된 동작들 ‘서고, 앉고, 반짝이고, 굴러라’ ‘마음대로 뛰어라’ 이러한 몸 움직임도 곁들여 보자. 일상의 동작들이 다 ‘생’ ‘장’ ‘멸’ 기운의 동작이다.

손발을 흔들어 주기, 손목 털기, 반짝반짝 손목 돌리기, 봄꽃들을 보며 안녕! 손 흔들기 나누어서 오 분마저도 우리 몸에게 자유를 준다.
자, 자유다. (芝暄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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