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천 시인을 찾아서 시집 “‘발해로 가는 저녁’을 통해 서정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였던 시인 |
| 2020. 01.02(목) 17: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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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웅기자/psw4488@naver.com
【광주=교육연합뉴스】박상웅 기자= 지난해 괄목할만한 작품 활동을 통해 지역 문학의 활성화는 물론 문단 안팎의 관심을 받았던 시인의 한 사람으로 정윤천 시인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본 지는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의 벽두에 새로운 연대의 시와 문학을 마중하는 마음으로 시인의 일상과 육성을 찾아가 보는 자리를 마련해 보았다.
<지금도 사슴이라는 말이 슬펐다>
정윤천
귀에서 실이 나왔다
발등을 밟아주면 사슴은 잔발로
숲을 달렸다
사슴의 다리 밑에서 흰 점박이 무늬 같은 헝겊을
만지작거리며 놀고는 하였다
사슴의 모가지만 잘라서 가져가 버렸다*
천강千江에 내린 달빛이
남김없이 스러졌던 아침까지
사슴의 울음소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궁금하고 무서운 달이
방문 앞에 와 걸려 있었다
사슴을 잃은 엄마의 눈이
한동안 슬픈 짐승처럼 빛이 났다.
* 당신의 재봉틀에서 누군가 머리만 떼어가 버린 일이 있었다.
<현대 시 12월호>
이 시는 그가 지난겨울에 발간된 시 전문지에 발표했던 “지금도 사슴이라는 말이 슬펐다”라는 시의 전문이다. “귀에서 실이 나온” “발등을 밟아주면” “잔발로 뛰는” “모가지만 떼어가 버린” 그러니까, “사슴”은 시인(화자)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자리한 어머니의 “재봉틀”이었던 셈이다. 어머니의 재봉틀에 대한 상실(누군가 떼어가 버린)의 기억은 이처럼 그에게 한 편의 생생하고 유별난 시의 서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시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시의 내용보다는, 재봉틀이 사슴으로 변하여 드러나는 ‘신생’의 순간에 있을 것 같다. 시집 “발해로 가는 저녁” 이후에도 여전히 그가 천착하고 있는 시에 관한 자세이거나 구도의 모습으로 여겨진다.
정윤천 시인은 전남 화순 출생으로 첫 시집 ‘생각만 들어도 따숩던 마을의 이름’을 시작으로 ‘흰 길이 떠올랐다.’ ‘십 만년의 사랑’ ‘구석’ 등의 시집을 통해 널리 알려진 중견 시인이다. 특히 “어디 숨었냐, 사십마넌” “십만 년의 사랑” 등의 시는 시낭송가들 사이에서 큰 사랑을 받는 애송시다.
무등일보 신춘문예 당선, 계간 실천문학 신인을 통해 문단에 나온 뒤 등단 삽 십 년을 넘어선 그는 작년에 여섯 번째 시집 ‘발해로 가는 저녁’을 펴내면서 적지 않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표제 시인 ‘발해로 가는 저녁’은 어머니의 임종을 대하는 시간을 소멸해 버린 왕국인 “발해”에 얹어 표현해낸 문제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는 이 시를 통해, 제13회 지리산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지리산 문학상 수상 작품집’으로 펴낸 시집은 2019년 3분기의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도서에 뽑히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이경림 시인은 시집의 추천사를 통해 “정윤천의 말들은 온몸으로 살아낸 자리에 피어난 씀바귀 꽃 같다. 신산한 누대의 삶들이 즐비하게 누운 들판에서 누군가 나직이 흥얼거리는 노랫가락 같다”고 표현했다.
결국 그가 보여주고 있는 소소한 일상들은 사라진 시간의 저편과 닿아있고 그것은 자신의 존재의 뿌리 어머니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 시인은 “깊이 있는 사유와 노회한 비유, 돌올한 말의 운용이 눈길을 사로잡는 이 시집에 당분간 붙들려 있을 것 같다”고 평했다.
정 시인은 “꽤 오랜만에 발간된 시집이다. 그간에 써온 시들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이번 작품집에서는 ‘서정시의 갱신’이라는 시작(詩作)법에 나름 고심해 보았다”며 “서정시를 통해서도 현대성을 도출하고 언어의 질감과 미적 사유를 부릴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했다. 문단의 일각에서는 그렇게 쓰여진 시들이 ‘초년’ ‘마루’ ‘서정시 같았다’ 등의 시편이라는 평가가 따르기도 했다.
한편으로 그는 “파괴와 혁신과 질서의 옹립이야말로 영원한 시의 문제의식이기도 할 것” 이라며 현재의 자신의 시관에 대해 설명했다.
그의 시를 사랑하는 많은 독자나 그에게서 시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가장 흔한 질문으로 ‘좋은 시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꼽기도 했다.
그는 “시에는 ‘깨달음’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최근에 시인이 읽었다는 한 편의 시에 대한 설명 속에서, 그가 말하는 ‘좋은 시’의 구조를 살펴보기로 한다.
“챔파꽃이 피는 강변에/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큰 도시의 공장으로/다른 소년이 일하러 나가는 동안/소년은 늘 혼자였습니다/ 물소들이 두 개의 뿔과 코만을 수면 위에 띄워 놓고/ 강둑 이쪽에서 저쪽으로 헤엄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소년은/ 강을 건너는 물소들의 뿔마다/ 챔파꽃 한 가지씩을 걸어주었습니다/ 챔파꽃 화관을 쓴 물소들이/ 끝없이 강을 건넜습니다/ 물소들은 이 세상의 어느 끝을 살다가도/ 이 강변을 향하여/ 어슬렁어슬렁 걸어왔습니다/ 물소들은 챔파꽃 화관을,/ 소년을 사랑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챔파꽃 피는 강변에/ 한 늙은 뱃사공이 살았습니다/ 강을 건너는 물소들의 뿔에/ 챔파꽃 가지를 매달아주며/ 언젠가 물소가 되어 돌아올 그 자신을 기다렸습니다. <곽재구 ‘인도’>전문
시인은 이 시에 대해 “시를 대하는 시인의 평화로운 세계관이 녹아 있고, ‘사실’이 아닌 ‘진실’이 자리하고 있다.(소년이 물소에게 실제로는 화관을 걸어줄 수 없다는 사실)”며 “사진보다 정확한 묘사 (물소들이 뿔과 코만을 수면 위에 띄워놓고) 등에서 나타난 진술. 소년이 강가를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늙은 뱃사공이 되었으며, 자신(소년)이 바로 물소가 되는 지점에 대한 각성을 불러일으켜 공감으로 이어지는 세계를 획득해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시가 창작의 태도에서부터 어떤 목적성을 갖거나 이데올로기적인 편협함에 갇히게 되는 경우 별로 좋은 시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시를 처음 접한 사람이라도 마음의 문과 귀를 열면 누구나 시를 향유하고 즐길 수 있다”며 실생활에서의 시의 효용성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정 시인은 “발해로 가는 저녁” 이후의 시들을 모아 가까운 시간에 새 시집을 발간할 계획임과 동시에 강의와 출판 등에 대한 작품 외적인 활동에도 하나씩 그림(틀)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문학 인생 삽십 년을 넘어선 시인의 발걸음이 경자년 새해를 맞이해 더욱 커다란 족적을 문단에 남기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광주=교육연합뉴스】박상웅 기자= 지난해 괄목할만한 작품 활동을 통해 지역 문학의 활성화는 물론 문단 안팎의 관심을 받았던 시인의 한 사람으로 정윤천 시인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본 지는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의 벽두에 새로운 연대의 시와 문학을 마중하는 마음으로 시인의 일상과 육성을 찾아가 보는 자리를 마련해 보았다.
<지금도 사슴이라는 말이 슬펐다>
정윤천
귀에서 실이 나왔다
발등을 밟아주면 사슴은 잔발로
숲을 달렸다
사슴의 다리 밑에서 흰 점박이 무늬 같은 헝겊을
만지작거리며 놀고는 하였다
사슴의 모가지만 잘라서 가져가 버렸다*
천강千江에 내린 달빛이
남김없이 스러졌던 아침까지
사슴의 울음소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궁금하고 무서운 달이
방문 앞에 와 걸려 있었다
사슴을 잃은 엄마의 눈이
한동안 슬픈 짐승처럼 빛이 났다.
* 당신의 재봉틀에서 누군가 머리만 떼어가 버린 일이 있었다.
<현대 시 12월호>
이 시는 그가 지난겨울에 발간된 시 전문지에 발표했던 “지금도 사슴이라는 말이 슬펐다”라는 시의 전문이다. “귀에서 실이 나온” “발등을 밟아주면” “잔발로 뛰는” “모가지만 떼어가 버린” 그러니까, “사슴”은 시인(화자)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자리한 어머니의 “재봉틀”이었던 셈이다. 어머니의 재봉틀에 대한 상실(누군가 떼어가 버린)의 기억은 이처럼 그에게 한 편의 생생하고 유별난 시의 서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시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시의 내용보다는, 재봉틀이 사슴으로 변하여 드러나는 ‘신생’의 순간에 있을 것 같다. 시집 “발해로 가는 저녁” 이후에도 여전히 그가 천착하고 있는 시에 관한 자세이거나 구도의 모습으로 여겨진다.
정윤천 시인은 전남 화순 출생으로 첫 시집 ‘생각만 들어도 따숩던 마을의 이름’을 시작으로 ‘흰 길이 떠올랐다.’ ‘십 만년의 사랑’ ‘구석’ 등의 시집을 통해 널리 알려진 중견 시인이다. 특히 “어디 숨었냐, 사십마넌” “십만 년의 사랑” 등의 시는 시낭송가들 사이에서 큰 사랑을 받는 애송시다.
무등일보 신춘문예 당선, 계간 실천문학 신인을 통해 문단에 나온 뒤 등단 삽 십 년을 넘어선 그는 작년에 여섯 번째 시집 ‘발해로 가는 저녁’을 펴내면서 적지 않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표제 시인 ‘발해로 가는 저녁’은 어머니의 임종을 대하는 시간을 소멸해 버린 왕국인 “발해”에 얹어 표현해낸 문제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는 이 시를 통해, 제13회 지리산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지리산 문학상 수상 작품집’으로 펴낸 시집은 2019년 3분기의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도서에 뽑히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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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림 시인은 시집의 추천사를 통해 “정윤천의 말들은 온몸으로 살아낸 자리에 피어난 씀바귀 꽃 같다. 신산한 누대의 삶들이 즐비하게 누운 들판에서 누군가 나직이 흥얼거리는 노랫가락 같다”고 표현했다.
결국 그가 보여주고 있는 소소한 일상들은 사라진 시간의 저편과 닿아있고 그것은 자신의 존재의 뿌리 어머니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 시인은 “깊이 있는 사유와 노회한 비유, 돌올한 말의 운용이 눈길을 사로잡는 이 시집에 당분간 붙들려 있을 것 같다”고 평했다.
정 시인은 “꽤 오랜만에 발간된 시집이다. 그간에 써온 시들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이번 작품집에서는 ‘서정시의 갱신’이라는 시작(詩作)법에 나름 고심해 보았다”며 “서정시를 통해서도 현대성을 도출하고 언어의 질감과 미적 사유를 부릴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했다. 문단의 일각에서는 그렇게 쓰여진 시들이 ‘초년’ ‘마루’ ‘서정시 같았다’ 등의 시편이라는 평가가 따르기도 했다.
한편으로 그는 “파괴와 혁신과 질서의 옹립이야말로 영원한 시의 문제의식이기도 할 것” 이라며 현재의 자신의 시관에 대해 설명했다.
그의 시를 사랑하는 많은 독자나 그에게서 시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가장 흔한 질문으로 ‘좋은 시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꼽기도 했다.
그는 “시에는 ‘깨달음’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최근에 시인이 읽었다는 한 편의 시에 대한 설명 속에서, 그가 말하는 ‘좋은 시’의 구조를 살펴보기로 한다.
“챔파꽃이 피는 강변에/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큰 도시의 공장으로/다른 소년이 일하러 나가는 동안/소년은 늘 혼자였습니다/ 물소들이 두 개의 뿔과 코만을 수면 위에 띄워 놓고/ 강둑 이쪽에서 저쪽으로 헤엄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소년은/ 강을 건너는 물소들의 뿔마다/ 챔파꽃 한 가지씩을 걸어주었습니다/ 챔파꽃 화관을 쓴 물소들이/ 끝없이 강을 건넜습니다/ 물소들은 이 세상의 어느 끝을 살다가도/ 이 강변을 향하여/ 어슬렁어슬렁 걸어왔습니다/ 물소들은 챔파꽃 화관을,/ 소년을 사랑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챔파꽃 피는 강변에/ 한 늙은 뱃사공이 살았습니다/ 강을 건너는 물소들의 뿔에/ 챔파꽃 가지를 매달아주며/ 언젠가 물소가 되어 돌아올 그 자신을 기다렸습니다. <곽재구 ‘인도’>전문
시인은 이 시에 대해 “시를 대하는 시인의 평화로운 세계관이 녹아 있고, ‘사실’이 아닌 ‘진실’이 자리하고 있다.(소년이 물소에게 실제로는 화관을 걸어줄 수 없다는 사실)”며 “사진보다 정확한 묘사 (물소들이 뿔과 코만을 수면 위에 띄워놓고) 등에서 나타난 진술. 소년이 강가를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늙은 뱃사공이 되었으며, 자신(소년)이 바로 물소가 되는 지점에 대한 각성을 불러일으켜 공감으로 이어지는 세계를 획득해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시가 창작의 태도에서부터 어떤 목적성을 갖거나 이데올로기적인 편협함에 갇히게 되는 경우 별로 좋은 시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시를 처음 접한 사람이라도 마음의 문과 귀를 열면 누구나 시를 향유하고 즐길 수 있다”며 실생활에서의 시의 효용성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정 시인은 “발해로 가는 저녁” 이후의 시들을 모아 가까운 시간에 새 시집을 발간할 계획임과 동시에 강의와 출판 등에 대한 작품 외적인 활동에도 하나씩 그림(틀)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문학 인생 삽십 년을 넘어선 시인의 발걸음이 경자년 새해를 맞이해 더욱 커다란 족적을 문단에 남기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교육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