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지기자/psw4488@naver.com
【충남=교육연합뉴스】이영지 기자= “단지 서산의 잊혀 가는 마을의 향수와 그리움을 화첩에 담아내며, 아마추어 작가로서 우리 지역을 알리고자 시작했습니다.”

전남 화순 도곡 예술까페 ‘첫눈’갤러리에서 지나간 시간으로의 여행을 통해 추억을 떠올리며 힐링의 시간을 나눌 수 있는 특별한 ‘우리 동네 서산’ 펜드로잉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장마의 시작을 알린 주말 오후, 충남에서 차로 두 시간여를 달려 찾아온 조의옥 화가를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첫눈’카페에서 반갑게 만났다.

조의옥 화가는 앞서 충남 지역에서 캘리그래피, 내포신도시에서 펜드로잉 전시회를 연 경험이 있다. 그런 그가 지난달 7일부터 오는 31일까지 전남 화순에 ‘서산의 잊혀 가는 마을’을 주제로 그림 전시회를 여는 연유가 궁금증을 자아낸다.

조 작가는 “평소 여행을 좋아하거든요. 몇 년 전부터 전라도에도 자주 오고 있는데요, 화순은 고향은 아니지만, 왠지 친숙하고요, 특히 ‘화순’ 하면 생각나는 문학인 정윤천 시인과는 인연이 있는 사이로, ‘첫눈’은 마음이 푸근한 친정집 같은 기분도 듭니다. 시인께서 우연히 제 그림을 보시더니 ‘이곳에 놓고 가라’고 하시더군요. 제겐 자식 같은 그림이라 망설였지만……화순과 서산은 그렇게 이곳에서 만난 것이지요.”

자신을 ‘아마추어 작가’라며 수줍어하며 어색해하던 조 작가는 자신의 그림에 담긴 충남 서산의 낡은 집들 앞에 서자, 점차 생기있는 목소리로 서산의 한 마을에 대한 스토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조의옥 화가의 작품

누구도 관심 두지 않을 것만 같은 이 소재들을 화폭에 담아 햇살 한줄기, 바람 한 점 불어 넣게 된 사연은 이랬다.

조의옥 작가는 “이 집은 도심 한가운데 있어 철거가 될까 봐 저는 조마조마해요. 가끔 불빛이 비추는 걸로 보아 아직 사람이 살고 있거든요. 그리고 이 식당은 폐업한 곳이 아니라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어요. 아 그리고 이 가게는 겉모습은 작지만 없는 게 없는 아주 오래된 ‘동네 수퍼마켓’이랍니다.”

고향 인근인 서산과 당진 지역에 남다른 시선과 애정을 가진 조 작가는 계속해서 한 작품, 한 작품, 한 집, 한 집 정성스럽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림 그릴 당시를 회상하며 생각나는 에피소드도 덧붙였다.

그는 “이 그림과 실제 모습은 사뭇 다른데요. 후미진 담벼락에 꽃을 심어 보았어요. 또 이 그림 속 마루는 마루 다리의 각, 그런 게 맞지 않아서 실수를 한 부분인데, 고추 말린 채반 그림을 더해서 그게 기사회생 되었어요. 또 이 그림은 대문의 위치, 담벼락의 구조가 바뀌면서 오히려 스토리가 있는 재밌는 집으로 변신했죠”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가장 아끼는 그림을 묻자 다른 그림과 달리 그는 채색이 되지 않은 그림 앞으로 안내했다. “이 집은 만물상인데 아직 미완이에요. 여기 양파망이 걸려있는데……. 양파망 속에 있는 양파를 그리기가 어렵더군요. 시장에 가서 망에 든 양파를 샀던 기억이 납니다. 이 그림만 보면 이것저것 시장에 내다 파시던,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엄마 모습이 생각나요.”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카페 2층에 전시된 오래된 집들은 자칫 어두울 수도 있었지만, 조 화가의 펜과 붓끝에서 세상에 하나뿐인 스토리를 지녔을 법한 특별한 집으로 재탄생해 생명력과 따뜻한 서정(抒情)의 기운을 가득 내뱉고 있었다.

비결을 물었다. 조 작가는 “아마도 제가 교사이다 보니 학생들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제가 그림을 처음 시작한 계기도 반 아이의 작품을 보고서 ‘아, 나도 따라 그리고 싶다’란 생각이 들어 바로 그날 밤을 새워 그림을 그렸죠. 다음날 학생이 잘 그렸다고 칭찬해 줬어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자신감을 얻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죠. 저에겐 반 학생이 첫 스승인 셈이에요.”

이어 그는 “그림 속 동심, 그리고 따뜻한 색감은 그렇게 점차 형성되어 발전하였고, 그와 함께 잠재해 있던 내면의 감성도 깨어난 것 같아요. 그림을 통해 반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치유된 것이지요. 한 참 예민한 아이들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도 ‘그림’ 덕분이며, 학교를 그만둘 뻔했던 아이는 웹툰 작가를 꿈꾸는 예비작가로 성장 중입니다.”라며 말을 이어갔다.

조의옥 화가의 작품

2014년경부터 학생을 따라 그리기 시작한 그림은 독학으로 이어졌고 점점 더 배우고 싶은 열정이 생긴 화가는 퇴근 후 문화센터 등을 찾아다니며 캘리그래피와 그림을 접목해 작품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작품 활동은 학교 현장으로도 이어졌다. 조 작가는 반 아이들에게 한 작품 한 작품을 그려 생일 선물을 하는 것으로 반 아이들의 마음을 두드렸고, 캘리그래피 동아리를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교내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작가는 “저뿐만 아니라 예민한 시기의 아이들에게도 그림은 많은 것을 선물해 줬어요. 그림은 집중력, 관찰력, 창의력 등을 길러주고 무엇보다 공부와 불안한 미래에 대한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내면을 따뜻하게 치료해 주는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었죠.”라며 만족해했다.

그는 그림의 멋과 맛을 알게 된 이후 꾸준히 자신만의 그림체와 채색을 연구하고, 발전시켰다. 캘리그래피를 넘어 팔을 걷어붙이고 펜드로잉을 한 지 2년. 그의 그림은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오기 시작해 내포신도시 충남도서관 전시회를 시작으로 이곳 화순 전시회를 통해 잊혀 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 작가는 “한번은 할아버지 한 분이 ‘나도 그림을 그릴 수 있겠느냐’고 하시더라구요. 그때부터 저는 차에 항상 그림 도구를 가지고 다닌답니다. 하나하나 직접 보여 드리며 설명을 해 드리고 있어요. ‘물론이죠, 얼마든지 하실 수 있어요’라고 했죠. 누구나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기면 저처럼 화가가 될 수 있어요, 마음이 한층 밝아질 수 있고요. (웃음).”라며 미소 지었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앞으로 작은 소망이 있다고 했다. “코로나가 끝나면, 전국의 전통시장(5일 장)에 여행을 다니고 싶어요. 그곳에 가면 인정(人情) 넘치는 이야깃거리가 또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요. 소소한 것들, 후미지고 외면받고 초라한 것들을 찾아 계속해서 따뜻한 그림의 옷을 입혀보고 싶어요.”

밖은 연신 장맛비가 내리고 실내엔 에어컨이 켜져 약간의 한기를 느끼게 했지만 인터뷰 내내 마음 한비짝 따스한 봄 햇살이 비추는 듯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시간이 멈춰진 그 마을의 풍경이 궁금했던 주말이었다. 인터뷰는 예정보다 훨씬 길어지고 있었다. 기자와 작가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커피잔을 다시 채웠다.

이영지 기자 psw4488@naver.com        이영지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