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교육청

곡성 3.1운동 기념탑앞에서 참석자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제공: 박영희 교사)
2021년 2학기 10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전라남도교육연수원에서 직무연수로 ‘남도민주평화길’이 완도‧여수‧함평‧곡성에서 1박 2일, 완도에서 2박 3일로 진행됐다. 남도 곳곳 가득 찬 삶의 아름다운 역사 이야기와 아픈 상처들을 만났다. 그 아픔은 이 땅을 지키고 인간존엄성과 자유를 지키려는 처절하고도 정의로운 몸부림이었다.
바다가 시작하는 곳 완도에서는 장보고의 도전‧개척정신을 가진 완도인의 기상을 보았다. 이순신 장군과 함께 가리포진을 지키면서 남도의 울타리가 되어 든든하게 지켜 온 장보고의 늠름한 장정의 어깨를 보았다. 그러한 기상으로 전남 완도는 함경도 북청, 부산 동래와 함께 항일운동의 3대 성지로 알려졌다.
약산‧금일‧신지‧소안도에는 가는 곳마다 항일기념탑이 있었다. 광주학생운동을 전국화시킨 장석천, 소안도 독립운동을 이끈 소안도 소학교 선생님인 송내호 등 독립운동을 함께 했던 사람들의 약력이 새겨져 있었다. 태극기의 섬 소안도 항일 기념관에는 중국에서, 일본에서, 나라 안에서 우리 민족이 연대하며 싸워 온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어 이 땅을 지켜온 남도인들의 기상을 느낄 수 있었고 인간 존엄성을 지키는 민주의 시작이었던 동학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완도민들은‘교육이 곧 항일이다!’는 신념으로 사립학교를 세우고 교육을 통한 남녀평등, 반상상존인 언어평등으로 평등 정신을 구현했고, 교육을 통해 민족정신을 일깨워 독립운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완도는 장보고 정신과 가리포 정신을 통해 근대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지켜온 보배로운 곳이 틀림없었다. 아! 이곳으로 우리 학생들과 체험활동‧수학여행을 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여순항쟁의 아픈 상처…‘여순특별법’으로 치유하자
다음날 ‘여순 10.19 항쟁지’인 여수 남도민주평화길을 걸었다. 여수 밤바다 화려한 불빛 아래 아픈 가슴 부여잡고 웅크리고 있는 여수의 모습을 보며 잠시 가슴이 먹먹해졌다.
여수는 전남‧전북‧경남에 걸친 많은 사람이 평온한 삶을 70여년이 넘도록 유린당한 여순항쟁의 중심지고, 광주 5.18의 10일간의 자치 공간처럼 며칠 간의 자치공간을 맛보았던 행복이 너무도 긴 세월 속 찰나의 시간으로 남아서인지 세월의 허망함과 덧없음으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듯 그렇게 있었다.
여순특별법이 통과되었음에도 외로이 바닷가에 함께 매장되어 있는 형제묘와 그 위에 위치한 곳에 있는 여순사건희생자위령비 뒷면의 1948년 10월 19일 ‘......’이 생략된 기록이 미처 말하지 못한 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듯 했다.
광주 5.18의 공수부대처럼 나라를 지키러 간 군인들에게 같은 도민을 죽이러 가라는 명령에 "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고, 그 정당하지 않은 정권은 나라에서도 쫒겨 나고 끝났음에도 단지 군인이라는 것 때문에 한마디 말도 없이 빨갱이가 되었고, 그들에게 아주 짧은 며칠 간 협조한 청년들을 좌익 빨갱이로 몰아 총살해 죽이고, 그 가족들은 연좌제로 꽁꽁 묶어 이 사회에서 자리 잡지 못한 채 70여년이 넘도록 그렇게 살아왔다.
2021년 올해 ‘여순특별법’이 통과되었으니 광주의 아픔을 치유해 왔듯이 제주의 아픔을 치유해 왔듯이, 이제 여순의 아픔을 풀어가고 치유해 가야겠다.
◆농민의 힘줄로 지켜온 의향 함평 남도민주평화길을 걷다
11월 첫 번째주 금-토요일에는 함평 남도민주평화길을 걸었다. 양림민간인학살터를 비롯해 함평 곳곳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의 피 울음이 용천사 산기슭에 빼곡히 꽃무릇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용천사 산 너머 불갑산에는 예전 빨치산 도당이 있었기에 밤이면 산사람들이 내려와 먹을 것을 구했고, 인근 주민들은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민간인 학살이 유독 많은 함평이었다. 농민의 힘줄로 지켜온 의향 함평! 지금도 발굴되고 있는 손불삼거리에 위치한 금산리 방대형고분은 함평 지형이 해안과 접해있고 현지에 강한 세력이 정착해 외부 세력과 바다를 통해 연결하며 소통하였음을 유물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함평은 영산강 유역 마한의 역사인 고대로부터 2천년의 역사를 쓰며 오늘에 이르렀다. 함평 사람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임진의병으로, 서당 선생님이었던 심남일(남일 심수택)의병장처럼 온 힘으로 일어난 한말의병, 한 번이 아니라 계속 이어진 3.1만세운동으로 나라를 위해 일어나 싸웠다.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할 때는 동학으로, 김철선생처럼 대한민국임시정부국무원으로, 해방 후에는 나라 재건으로, 5.18민중항쟁으로, 함평고구마사건으로 분연히 일어나 민족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함평 남도민주평화길을 걸으며 남도인으로서 자존감을 가지고 정의롭고 당당하게 살아 온 함평인의 기상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래된 미래, 곡성 남도민주평화길을 걷다.
11월 두 번째주 금-토요일 올해 마지막으로 곡성 남도민주평화길에 이르렀다. 곡성은 옥과현과 곡성현으로 구성되고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산세로 전북의 남원과 구례를 연결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고려 건국공신 신숭겸, 조선 건국공신 마천목, 임진의병 유팽로와 18의사들, 유생층과 향리층 모두가 힘을 모아 싸워온 한말의병과 항일투쟁에 12의사가 앞장서서 나라 지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인 고장이다.
항일투쟁은 나라 건국을 한 단군 사당을 통해 민족정기를 세우고 높여 기어코 독립을 쟁취하려는 의지였으며, 그 일은 곡성에서 3.1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교사인 신태윤 선생이 군민들의 의지를 모아 해냈다.국태민안을 기원하는 태안사, 동악산 구림사의 깊어가는 산세는 나라가 위급했던 시절 싸움의 흔적들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그 옛날 보국안민을 외치며 일으킨 동학농민혁명군이 이산 저산을 거점으로 하여 이동하면서 싸웠던 저 산길, 항일투쟁을 하러 산으로 숨어들면서 무장 투쟁을 했던 분들, 여순항쟁 저항군들이 인근지역에 이 부당한 사실을 알리면서 이동했던 이들이 모두 산 사람, 우리들이 좌익, 공산당이라고 배운 빨치산이 아니던가?
구림사, 태안사 산길은 떨어지는 낙엽길은 또 다른 낭만이 있었다. 동악산 도림사 계곡 따라 바위에 새겨진 글을 보며 인생을 생각하게 되었고 태안사 탱화를 보며 자비로운 삶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곡성 남도민주평화길을 통해 통일기원국조단군과 고려건국공신 신숭겸, 조선건국공신 마천목 등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가는 기운을 받으며 국태안민을 기원하며 돌아왔다.
2020부터 시작된 전라남도교육연수원의 남도민주평화길을 걸을수록 이 조그마한 한반도의 생존과 지금의 민주주의가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이어져 왔음을 확인하였다.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죽음을 각오하고 처절하게 싸웠고, 인간존엄성을 억압하는 불의한 상황에 대해 분연히 일어나 저항하며 바로 세우는 정의로운 남도인이었다.
마지막으로 바램이 있다면 이러한 의미있는 남도민주평화길을 우리 학생들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걸었으면 한다. 전남의 모든 자치단체와 지역교육청 그리고 학교에서는 지역에 근무하는 선생님들과 미래세대인 우리 학생들이 남도인의 기상을 느낄 수 있도록 민주시민교육으로서 지역의 ‘남도민주평화길’을 체계적으로 추진해가면 좋겠다. 전라남도와 도의회 그리고 전남교육을 맡은 전라남도교육청은 지역에서 이러한 남도평화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와 재원을 마련해주길 기대해본다.
교육연합뉴스 psw4488@naver.com






편집 : 2026.08.26 (수) 20:47




